게임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 ‘어쌔신 크리드(2016)’는 수많은 팬층을 보유한 유비소프트의 대표 게임을 바탕으로 한 작품입니다. 개봉 당시 기대감이 높았던 만큼, 평단과 대중의 반응은 엇갈렸지만 영화에 담긴 세계관과 철학적 메시지는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어쌔신 크리드는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니라 역사와 과학, 인간의 자유의지를 아우르는 서사를 담은 작품입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의 역사적 배경, 독창적인 설정, 그리고 철학적 주제를 깊이 있게 재조명합니다.
배경: 15세기 스페인과 이단심문
영화 어쌔신 크리드의 핵심 배경은 1492년 스페인, 즉 스페인 이단심문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이는 실제 역사에서 가톨릭 왕이었던 페르디난드 2세와 이사벨라 1세가 종교적 통일을 명분으로 유대인과 무슬림을 박해했던 시기입니다. 영화 속 주인공 칼 린치는 현대의 사형수로, 죽음을 위장한 후 애프스터고 사의 실험에 참여하게 되며, 조상인 아귈라르의 기억에 접속하게 됩니다. 이 아귈라르는 어쌔신 교단의 일원으로, 스페인 내에서 템플 기사단과 맞서 싸우며 ‘에덴의 사과’라는 고대 유물을 지키기 위한 임무를 수행합니다. 영화는 이 시기를 단순한 액션 배경으로만 사용하지 않고, 종교적 탄압과 권력의 부조리를 매우 사실감 있게 묘사합니다. 성직자들이 권력을 독점하고, 이단으로 몰린 이들이 고문과 화형에 처해지는 장면은 관객에게 당시의 공포를 고스란히 전달합니다. 이러한 억압의 시대에서 자유의지와 신념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어쌔신 교단의 존재는 단순한 ‘비밀 결사’가 아닌, 철학적 저항 세력으로 해석됩니다. 특히 영화에서는 아귈라르가 단순히 전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과 대의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감정적인 무게감도 더해집니다. 또한, 15세기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 발견 직후라는 시대적 특성상, 역사적 전환기와 대외 확장이 맞물린 시기로, 어쌔신과 템플러의 대립이 더욱 글로벌하게 확장되는 출발점이 되기도 합니다. 게임에서도 중요한 시대이지만, 영화는 이를 시각적으로 재현하며 역사와 허구가 절묘하게 결합된 세계를 제시합니다.
설정: 애니머스와 유전자 기억 기술
어쌔신 크리드 영화의 중심 설정은 바로 ‘애니머스’ 기술입니다. 이는 인물의 DNA에 남아 있는 조상의 기억을 탐색하고 재현하는 가상현실 장치로, 게임에서도 동일한 개념이 사용됩니다. 그러나 영화는 시각적으로 더욱 동적인 접근을 취했습니다. 기존 게임의 애니머스가 침대 형태였다면, 영화에서는 거대한 로봇팔 형태로 구현되어, 사용자가 과거의 움직임을 현실에서 그대로 따라 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시청자는 ‘시간 여행’이 아니라 ‘기억 여행’을 더욱 실감 나게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설정은 단순한 SF 요소를 넘어서, 현대 과학철학의 여러 질문을 던집니다. 예를 들어, 유전자는 단순히 생물학적 정보만을 담고 있을까? 인간은 조상의 기억이나 경험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영화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유전적 기억이라는 개념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인과적 연결을 탐구합니다. 이는 주인공 칼이 아귈라르의 기억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재정의하게 되는 과정으로도 연결됩니다. 애니머스는 또한 현대 권력의 상징인 ‘애브스터고 사’가 인간을 통제하려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단순한 기업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템플 기사단의 현대적 형태입니다. 이들이 애니머스를 통해 조상들의 기억을 추출하고, 고대 유물을 회수하려는 시도는 단순한 탐사라기보다는 권력을 재구성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기억조차도 통제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영화는 던집니다.
철학: 자유의지 vs 통제
어쌔신 크리드의 핵심 철학은 자유의지를 수호하려는 자들과, 이를 통제하려는 세력 간의 대립입니다. 템플 기사단은 인류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없으며,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자유의지를 제거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합니다. 반면 어쌔신 교단은 인간이 선택할 자유를 가져야 하며, 그 선택에서 오는 갈등과 혼란마저도 삶의 일부로 수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 두 철학의 충돌은 영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상징과 대사, 행동으로 표현됩니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에덴의 사과’는 고대 유물로, 인류의 자유의지를 제거하거나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전해집니다. 이 사과를 차지하려는 템플 기사단의 목적은 명확합니다. 인간 사회에서 범죄와 전쟁, 갈등을 없애기 위해 인류 전체를 ‘선의의 통제’로 묶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통제는 자유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며, 어쌔신들은 이를 절대 용납하지 않습니다. 주인공 칼은 처음에는 어쌔신들의 철학에 회의적이었으나, 조상의 기억을 체험하고 진실을 마주하면서 점점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이는 인간이 외부 권력이나 유전적 운명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변화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는 이 과정을 통해, 단순히 ‘싸움’이 아닌 ‘사상’의 충돌을 그려냅니다. 이러한 자유와 통제의 대립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주제입니다. 개인정보 수집, 인공지능, 감시사회 등의 문제는 영화 속 설정과 겹쳐지며, 어쌔신 크리드가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을 반영한 은유임을 보여줍니다. 철학적 깊이를 가진 이 영화는 관객에게 단순한 오락이 아닌 사고의 전환을 요청합니다.
영화 어쌔신 크리드는 15세기 스페인의 역사적 맥락, SF적 상상력으로 탄생한 애니머스 설정, 인간 존재의 핵심을 파고드는 철학적 메시지를 아우르는 복합 장르의 작품입니다. 개봉 당시 평가는 엇갈렸지만, 지금 다시 보면 그 깊이와 상징성이 놀라울 정도로 풍부합니다. 특히, 자유의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대에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더욱 유효합니다. 게임 원작 영화이지만 단순한 팬 서비스에 그치지 않고, 독립적인 세계관과 철학을 구축한 어쌔신 크리드. 지금 다시 감상해 보며 그 의미를 되새겨보시길 바랍니다.